제목: 혼자 사는 사람들(Aloners).
개요: 드라마, 한국, 90분.
개봉: 2021.05.19.
감독/출연: 홍성은/공승연, 정다은.
혼자가 편한 진아.
혼자 사는 사람들의 주인공인 진아 역을 맡은 공승연 배우가 인상 깊다. 처음에는 공승연인 줄 못 알아봤다. 내가 알던 공승연 배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진아는 평소에 표정이 없고 말투도 무미건조하다. 그게 아니면 자꾸만 화가 나 있는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셨고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던 아빠가 돌아와 엄마의 임종을 지켰다. 엄마 곁으로 돌아와 엄마의 마지막을 지켰으니 아버지의 잘못도 용서되는 것일까. 그런데 다시 살림을 합쳤으니 엄마의 전재산까지 아버지에게 상속한단다. 진아는 이런 아버지가 사과도 없이 돌아가신 엄마의 핸드폰으로 자꾸 연락을 해오는 게 싫다. 아버지가 진아에게 한 말이 귀에 박혔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어떻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왜 화가 나있냐는 말도. 진아는 엄마가 돌아가신 슬픔도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표현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을 가둬두고 지낸 것 같다. 카드회사의 콜센터에서 일하며 고객의 상담전화에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답변을 하는 진아. 그리고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점심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며 혼자 먹는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로 방안 침대에서만 지낸다. 이 모든 게 진아에게는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상이다. 퇴근길에 아파트 복도에서 만난 옆집 남자가 말을 건네지만 진아는 그와 인사를 나누는 것도 부담스럽다. 자신의 일상에 무엇이든 사람이든 침범하는 게 귀찮고 싫은 듯 보인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여느 날처럼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옆집 남자를 봤다. 지나가는 말로 남자가 진아에게 인사 좀 해주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경비실에 신고한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진아는 아침에도 만났던 옆집 남자가 일주일 전에 집에 혼자 죽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가 어려운 수진.
그런 진아에게 신입사원 교육이라는 업무가 주어진다. 진아는 역시나 혼자인 게 편하고 신입사원 교육을 거부한다.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셨고 옆집 남자의 일까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신입 교육도 업무라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된다. 진아는 그렇게 만난 신입사원 수진의 선임이 된다. 사회 초년생인 수진은 선임인 진아와 잘 지내보려고 다가 가지만 진아는 그런 수진이 부담스럽다. 진아는 수진에게 업무를 가르쳐 줄 때도 메뉴 얼 대로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객의 무리한 부탁이나 욕설에 당황하는 수진에게 그냥 죄송하다고 하라며 진아는 수진에게 업무적인 것만 가르친다. 진아와 다르게 혼자가 어려운 수진이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 어려웠던 수진은 진아와 함께 식사하자고 하지만 진아는 수진에게 선을 긋는다. 수진이 진아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일들이 자꾸 수진의 실수로 이어져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밝고 활기차 보이던 신입사원다운 수진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어두운 모습니다. 어느 날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는 고객의 전화 응대를 하던 수진은 자신의 의식대로 고객에게 묻는다. 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고객은 지금은 다들 바쁘게 지내 그렇지 못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며 응원하던 그때가 그립다고 대답한다. 그런 고객의 말에 수진은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얘기한다. 고객의 외로움도 그리고 그에 공감하는 수진의 외로움도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고 나서 수진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진아는 수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혼자가 쉽지는 않다.
죽은 옆집 남자의 집에 새로 이사 온 성훈이 인사를 건네 온다. 싸게 나온 집의 이유가 궁금해 물어오는 성훈에게 진아는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고 얘기한다. 성훈은 진아의 말을 웃어넘기지만 그 집의 사정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혼자 외롭게 죽게 된 청년의 제사를 지내준다. 진아는 아버지 집에 있는 홈캠으로 아버지를 보곤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에 화가 났다. 진아와 얘기를 나누다가 성훈이 건넨 말이 인상 깊다. 그쪽은 원래 그렇게 맨날 화가 나냐고 말했었다. 수진이 나오지 않아도 일상은 그대로 흘러가지만 진아는 신경이 쓰인다. 날마다 혼자 먹었던 점심을 먹기가 힘들다. 고객을 응대하다가 거슬리는 신호음이 계속 들려오고 한꺼번에 감정이 터져버린 진아는 회사를 뛰쳐나간다. 시끄러운 곳에 있어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감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수진에게 전화를 걸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계속된 시도에 수진과 통화가 된 진아는 사실 자신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진아는 제대로 된 작별을 하고 싶었다며 수진에게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며 진심을 전하고 수진은 울음을 터뜨린다. 진아는 이제 텔레비전도 끄고 커튼도 걷어 어두운 방에 햇빛이 들어오게 한다. 회사를 휴직하고 팀장과 인사를 하고 아버지와도 거리를 정한다. 진아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외로움을 다스릴 수 있는 혼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1인 가구들이 많아지고 서로에게의 관심은 오지랖으로 치부되는 게 사실이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공감할 외로움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혼자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혼자가 쉽지는 않다. 우리는 혼자이지만 온전히 혼자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바뀌어버린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나름대로의 관계를 맺으며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긴장감을 주는 사건 사고 없이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었지만 그 안에서 주인공 진아의 감정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진아의 표정과 화가 난 듯한 말투가 변해가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따뜻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진아의 세상이,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이 좀 더 단단하고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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